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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명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전 전시콘텐츠 조사 연구용역
기관명 문화체육관광부
담당부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 전시운영과
전화번호 02-3703-9265
연구기간 2018-11-06 ~ 2018-12-20
연구분야 국립박물관 운영
개요 ㅇ 개요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2019년 2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전을 개최하고자 함. 3.1운동과 관련해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을 발굴해 3.1운동을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전시를 개최함으로써 그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는 계기로 삼고자 함. 이 특별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3.1운동 전문연구자에 의한 관련 전시콘텐츠 조사 연구가 체계적으로 진행됨이 필요함

ㅇ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전 개최를 위해   3.1운동 관련하여 그동안 덜 주목받았던 인물들 선정
  - 일반인에게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1919년의 기억과 경험을 ‘자료’로서 확인 가능하며, 1919년 이전 또는 이후의 행적을 주목할 만한 인물 20명 내외 선정 
  - 선정 과정에서 종교, 이념, 직업, 성별, 연령, 지역 등의 다양성을 고려하며, 이후 친일을 한 자와 외국인도 포함시킴

ㅇ 선정된 인물에 대한 전시콘텐츠 확보
  - 인물에 대한 기본정보(출생, 사망, 학력, 친인척 등), 1919년 당시의 행적(직업, 거주지, 관련단체, 관련인물 등), 1919년 이후의 행적(활동, 관련단체, 관련인물, 특이점, 독립유공자 정보 등) 
  - 인물 관련 전시가능 자료 소재 파악 및 자료 해제 
  - 해당 인물에 대한 생애사, 그에 대한 주요 연구성과 및 평가

계약정보

과제정보
수행기관 한남대학교 산학협력단 [대학]
수행연구원 박종린
계약일자 2018-11-06
계약방식 수의 계약
계약금액 14,500,000원

연구결과 정보

과제정보
제목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전 전시콘텐츠 조사 연구용역
연구보고서
목차
Ⅰ. 연구개요  1
  1. 연구용역명 
  2. 연구용역 목적 
  3. 연구용역 기간 

Ⅱ. 연구 수행 내용
  1. 연구 방향  
  2. 연구 방법 
  3. 연구 조사 양식 

Ⅲ. 총론: 3?1운동, 운동 ‘주체’와 ‘공간’의 확대

Ⅳ. 전시콘텐츠 조사 자료  
  ① 강용흘
  ② 김경천
  ③ 김대우
  ④ 김마리아
  ⑤ 김법린
  ⑥ 김원벽
  ⑦ 김윤식
  ⑧ 김진우
  ⑨ 박래원
  ⑩ 심훈(심대섭)
  ⑪ 유자명
  ⑫ 유준근
  ⑬ 윤봉춘
  ⑭ 이미륵
  ⑮ 정석해
  ? 정칠성
  ? 최은희
  ? 피터 현
  ? 한위건
  ? 후세 다츠지
초록
3.1운동, 민주주의의 시작 1919년 3.1운동은 한국근현대사에서 1894년 갑오농민전쟁과 국권회복운동기 의병전쟁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한 ‘民’이 역사의 주체가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역사적 사건이다. 3.1운동은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로 통치 방식을 변경하는 계기가 되었고, 아시아의 반제국주의운동에 자극을 주었다. 또한 통일적 지도부의 필요성과 공화주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시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의 문제가 대중화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사건이다. 노동자와 농민, 청년?학생들이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이후 대중운동을 주도하면서 역사의 주체로 자신들을 자리매김해 나갔기 때문이다. 만세 시위의 전개 1919년 3월 1일, 서울의 탑골공원을 비롯하여 평양, 원산, 의주 등 북부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그 열기는 철도와 간선 도로를 따라 인근 도시와 농촌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만세 시위는 3월 말부터 4월 초에 절정을 이루었다. 일본의 통계에 따르면 1919년에만 232개 부?군 가운데 94%에 이르는 218개 부?군에서 만세 시위가 발생하였고, 전 인구의 10%인 약 200만 명의 조선인이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를 통한 운동 ‘공간’의 확대 3.1운동의 전국적인 전개는 종래 서울, 또는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사회운동의 공간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중요한 계기였다. 이러한 만세 시위의 경험을 통해 각 지역의 운동 주체가 형성되었고, 그들에 의해 부?군 단위를 중심으로 면 단위와 도 단위의 운동도 전개되었다. 이는 3.1운동 이후 대중운동이 전국적으로 활성화되는 토대가 되었다. 만세시위를 통한 운동 ‘주체’의 확대 3.1운동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는 종래 소수의 지식인이나 정치가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운동의 주체가 다수의 대중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였다. 3.1운동이 기획되고 전개되는 초기부터 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졌고, 만세 시위의 전개 과정에는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 여성 등이 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였다. 만세 시위에 참여했던 새로운 주체들은 3.1운동 이후 폭발적으로 전개된 대중운동(노동운동, 농민운동, 청년운동, 학생운동, 여성운동 등)과 지역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대중운동과 지역 운동의 주체로 성장하였다. 또한 나이가 어려거나 다양한 사정으로 인해 만세 시위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만세 시위를 직접 목도했거나 현장의 분위기에 동조했던 경험을 가졌던 이들 가운데서도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선정한 20인의 특징 첫째, 연령층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최고령자인 1835년생 김윤식부터 최연소자인 1907년생 최은희까지 70년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둘째, 지역 출신이 대다수이라는 점이다. 서울 출신은 김윤식 뿐이다. 셋째, 지역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이들의 존재한다는 점이다. 범어사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김법린, 고향인 충주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한 유자명, 고향 근처인 함북 회령에서 만세 시위에 참가한 윤봉춘 등이 그들이다. 넷째, 종교계와 함께 3?1운동을 이끈 학생지도부의 존재이다. 김원벽은 연희전문학교 학생 대표이자 학생지도부의 리더였고, 한위건도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대표이자 김원벽?강기덕과 함께 학생지도부의 리더였다. 김대우는 경성공업전문학교 학생 대표였다. 다섯째, 새로운 주체인 여성들의 존재이다. 김마리아?정칠성?최은희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가운데 정칠성은 기생 출신이었다. 여섯째, 외국인의 존재이다. 후세 다츠지가 바로 그이다. 일곱째,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지도자와 친일파로 분화되는 인물의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위건과 정칠성은 국내외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하였고, 유자명은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였다. 이에 비해 김대우는 총독부 관료로 전변하여 ‘황국신민의 서사’ 제정에 관여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파의 삶을 산 인물이다.
 

3.1운동, 민주주의의 시작 
1919년 3.1운동은 한국근현대사에서 1894년 갑오농민전쟁과 국권회복운동기 의병전쟁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한 ‘民’이 역사의 주체가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역사적 사건이다. 
3.1운동은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로 통치 방식을 변경하는 계기가 되었고, 아시아의 반제국주의운동에 자극을 주었다. 또한 통일적 지도부의 필요성과 공화주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시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의 문제가 대중화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사건이다. 노동자와 농민, 청년?학생들이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이후 대중운동을 주도하면서 역사의 주체로 자신들을 자리매김해 나갔기 때문이다.      

만세 시위의 전개 
1919년 3월 1일, 서울의 탑골공원을 비롯하여 평양, 원산, 의주 등 북부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그 열기는 철도와 간선 도로를 따라 인근 도시와 농촌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만세 시위는 3월 말부터 4월 초에 절정을 이루었다. 일본의 통계에 따르면 1919년에만 232개 부?군 가운데 94%에 이르는 218개 부?군에서 만세 시위가 발생하였고, 전 인구의 10%인 약 200만 명의 조선인이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를 통한 운동 ‘공간’의 확대
3.1운동의 전국적인 전개는 종래 서울, 또는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사회운동의 공간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중요한 계기였다. 이러한 만세 시위의 경험을 통해 각 지역의 운동 주체가 형성되었고, 그들에 의해 부?군 단위를 중심으로 면 단위와 도 단위의 운동도 전개되었다. 이는 3.1운동 이후 대중운동이 전국적으로 활성화되는 토대가 되었다. 


만세시위를 통한 운동 ‘주체’의 확대
3.1운동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는 종래 소수의 지식인이나 정치가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운동의 주체가 다수의 대중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였다. 3.1운동이 기획되고 전개되는 초기부터 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졌고, 만세 시위의 전개 과정에는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 여성 등이 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였다.  
만세 시위에 참여했던 새로운 주체들은 3.1운동 이후 폭발적으로 전개된 대중운동(노동운동, 농민운동, 청년운동, 학생운동, 여성운동 등)과 지역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대중운동과 지역 운동의 주체로 성장하였다.     
또한 나이가 어려거나 다양한 사정으로 인해 만세 시위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만세 시위를 직접 목도했거나 현장의 분위기에 동조했던 경험을 가졌던 이들 가운데서도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선정한 20인의 특징  
첫째, 연령층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최고령자인 1835년생 김윤식부터 최연소자인 1907년생 최은희까지 70년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둘째, 지역 출신이 대다수이라는 점이다. 서울 출신은 김윤식 뿐이다.    
셋째, 지역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이들의 존재한다는 점이다. 범어사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김법린, 고향인 충주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한 유자명, 고향 근처인 함북 회령에서 만세 시위에 참가한 윤봉춘 등이 그들이다.  
넷째, 종교계와 함께 3?1운동을 이끈 학생지도부의 존재이다. 김원벽은 연희전문학교 학생 대표이자 학생지도부의 리더였고, 한위건도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대표이자 김원벽?강기덕과 함께 학생지도부의 리더였다. 김대우는 경성공업전문학교 학생 대표였다. 
다섯째, 새로운 주체인 여성들의 존재이다. 김마리아?정칠성?최은희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가운데 정칠성은 기생 출신이었다. 
여섯째, 외국인의 존재이다. 후세 다츠지가 바로 그이다.  
일곱째,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지도자와 친일파로 분화되는 인물의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위건과 정칠성은 국내외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하였고, 유자명은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였다. 이에 비해 김대우는 총독부 관료로 전변하여 ‘황국신민의 서사’ 제정에 관여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파의 삶을 산 인물이다.
주제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전 전시콘텐츠 조사 연구용역
발행년도 2018년

연구결과 평가 및 활용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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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결과서
활용결과 보고서 ※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영 제52조에 따라 연구 종료 후 6개월 이내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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